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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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a Fitzgerald
'무한한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여인 엘라 피츠제럴드, 아니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녀는 평생 밝은 미소에 부드러운 음성으로 순진한 사랑과 삶의 긍정적인 면을 노래했다. 우리는 엘라 피츠제럴드를 통해 위안을 받고 즐거움을 맛본다.

여성 보컬리스트로 함께 이야기가 되는 빌리 홀리데이는 허기진 모습을 토로하는 짙은 호소력으로 삶의 애환을 노래한다. 빌리의 노래는 귀로 듣는 노래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고 함께 우는 노래이다. 그녀의 노래는 감정 이입을 통해 아픔을 분배한다. 그러나 엘라에 이르러 아픔은 환희로 승화되고 고통은 따뜻한 이해로 녹는다.

엘라는 무한한 즐거음을 노래한다. 아무리 슬픈 노래를 부를지라도 이번에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그녀의 노래에는 넉넉한 마음과 순진한 사랑 그리고 절대적인 유머가 있다. 흥겨운 모습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최상이다. 어느 누가 삶의 묘미를 이처럼 맑고 순진하게 그려 낼 수 있을까.

생활 속의 냉소가 엘라에게는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잘 익은 포도주 처럼 숙성도가 높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는 클라이맥스에서 토해 내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어떤 노래라도 엘라를 통하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초심자는 물론 까다로운 감상자에게도 만족을 준다. 이로써 엘라는 '노래의 퍼스트 레이디'(The First Lady of Songs)라는 별명을 얻었다.

1935년 어느 날, 할렘의 오페라 하우스가 주최한 콩쿠르에 한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는 솜털처럼 가벼운 몸놀림에 탄력적인 스윙을 실어 열창했다. 청중은 열광했고 소녀는 대상을 차지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소녀는 곧 드러머인 칙 웨브(Chick Webb) 악단에 기용되었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프로페셔녈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칙 웨브는 엘라를 앞세우고 미국 전역을 여행했다. 엘라는 화려한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솜털처럼 가벼운 춤을 추며 미국인을 사로잡았다. 엘라는 갈채를 보내는 청중에게 "탱큐"라는 답례할 때조차 스윙이 느껴지는 천부적인 음악성이 있었다. 더구나 애초에 댄서를 지망했을 정도로 노래 못지 않은 춤 솜씨가 사람을 유혹했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고아로 자란 그녀는 칙 웨브의 양녀가 되었고 화려한 가수로 갈채를 받기 시작했다. 칙 웨브가 세상을 떠나자 엘라가 악단을 이끌기도 했다.


가장 미국적인 노래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최고의 찬사를 받은 그녀였지만 개인적인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몇 주 만에 끝난 첫 결혼 그리고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Ray Brown)과의 결혼도 4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음악 활동을 위해 끊임없이 요구되는 연주 여행으로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며 가끔씩 로맨스를 나누었다. 1957년에는 노르웨이 공연 기획자인 토르 아이나르 라르센과의 결혼을 인정했으나 후에 부인한다고 밝혔다. 1961년에는 덴마크의 비행사 직원과 사랑에 빠져 코펜하겐에 아파트까지 마련하였으나 2년 후에 이 사랑도 막을 내렸다. 이 외에도 몇 번의 로맨스가 있었지만 그녀는 평생동안 어디에도 안착하지 않았다.

남편과 애인들은 왔다가 갔지만 음악은 끝까지 그녀를 지켰다. 사랑이 좌절을 가져올 때마다 마이크를 잡은 그녀의 손은 더욱 떨렸고 그녀의 노래는 고통이 숙성된 기쁨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엘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악기 다루듯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녀의 스켓은 너무나 완벽해서 어느 악기도 흉내를 낼 수 없었다. 더구나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데도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그녀가 무대에서 질풍노도와 같은 스캣을 몰고 가면 청중은 열광했고, 지그시 눈을 감고 흐느적거리며 노래를 부르면 청중은 얼어 붙은 듯 숨을 죽이고 경청했다.

엘라의 레코딩은 광범위하다. 비공식적인 집계로 60여 앨범이 나와 있다. 다양한 구성의 편집 앨범까지 합하면앨범은 더욱 많아진다. 그 가운데 명반의 대열에 오른 음반도 부지기수이다. 초기 앨범과 카운트 베시 악단 시절 또는 베를린, 런던 등에서의 실황 음반과 넬슨 리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음반이 사랑을 받는다. 1966년 여름 남부 프랑스의 코테 다쥐르에서 열린 재즈페스티벌에서 듀크 앨링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실황 앨범도 좋다.

이 무대에서 엘라는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를 뒤로 하고 열창을 했지만 사실은 동생인 프란세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슬픔을 감추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밝고 명랑했지만 무대를 내려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잠겼다는 일화가 있다. 커다란 우환 속에서도 스케쥴을 취소하지 않고 공연장에 나타나는 엘라의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여 주는 일화이다.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Teddy Wilson)이 이끄는 '잉크 스팟', 베니 굿맨 오케스트라, 밀즈 브라더스(Mils Brothers), 빌 도겟(Bill Doggett)과 피아니스트 토미 플라나건은 엘라와 오랫동안 음악적 교분을 쌓았고 많은 음반을 남겼다.

1957년에 루이 암스트롱과 녹음한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가장 미국적인 노래' 라는 평을 듣는다. 이를 계기로 엘라는 재즈의 한계를 넘어 발라드 싱어로서 면보도 갖추게 된다.

1993년 75세에 은퇴를 선언하고 휴식에 들어간다. 반세기가 가까운 세월을 무대에서 보냈던 엘라는 1996년 노쇠하여 세상을 떠난다.


- 김진묵의 재즈 이야기, 이상한 과일 중에서 -


아래는 엘라의 앨범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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