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전설의 집시 기타리스트 쟝고 라인할트
무슨 일이든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일을 즐기고 또 노력까지 하는 사람은 더더욱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즐기면서 노력하는 사람은 필사적으로 보이기 보다 여유로움을 잃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곤 한다. 쟝고 라인할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든 불가능을 타고난 낙천성과 노력으로 극복해 낸 인물이다.
1. 첫 번째 불가능 - 손가락이 두 개 밖에 없는 기타리스트
쟝고 라인할트는 기타리스트로서 아주 중요한 왼손가락이 2개 밖에 없다. 1928년에 심한 화상을 입은 그는 사진에서 보듯이 그의 네째, 다섯째 손가락은 마비되어 붙어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집시로 태어난 쟝고는 파리 근교의 집시들이 모여사는 캠프촌에서 자랐다. 집시들은 빨리 결혼을 하는 전통과 남자들은 일을 안하고 여자들이 일을 해서 가족을 벌어먹이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텐트를 치고 사는것이 아니라 항상 이동할 수 있는 포장마차에서 생활을 하는데 당시 18세였던 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그의 부인은 조화를 만들어서 파는 일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하루는 밤에 담배를 피러 밖에 나왔던 그는 조화를 보관하는 포장마차에서 쥐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쥐를 잡으려다가 오히려 불을 내게 된다. 워낙에 불이 잘붙는 조화이다 보니 불은 금새 큰불로 번졌고 물론 자신이 낸 불이니 가장 먼저 도망친 것도 그였다. 그러나 자신의 부인이 탈출을 하지 못한 것을 알고 부인을 구하기 위해 다시 화재현장에 들어가게 되고 부인은 구했지만 자신은 기타리스트로서 가장 중요한 왼손가락이 눌러붙고 마비되는 치명상을 당하게 된다. 의사 또한 왼손은 거의 쓸 수 없을 것이라는 판정을 내렸으나 전혀 실망의 기색없이 스스로 기타를 가져다가 물리치료를 한다.
후에 유럽과 미국에서 큰 명성을 얻은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화재사건이 그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 그는 "손가락이 4개일 때는 쓸데없는 음을 많이 쳤는데 사고 후에는 필요한 음만 치게 되었고 그래서 내 음악이 더 좋아진 것 같다"는 말을 남긴다.
- 단지 2개의 손가락으로 기타를 쳤다는 것이 신기할 뿐인가?
기인 열전처럼 손가락 두개로 기타를 치는것만 신기했다면 죽은지 50년(1953년 사망)도 지난 지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유럽에서 등장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최초의 유럽출신 재즈 뮤지션이면서 오히려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에까지 역으로 영향을 끼친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자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이다.
2. 두 번째 불가능 - 음악 교육을 전혀 받은 적이 없는 뮤지션
쟝고 라인할트는 음악 교육을 전혀 받은 적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도 쓰지 못하는 한마디로 "일자 무식"인 사람이다. 심지어는 돈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고 한다.그는 모든 연주를 자신의 타고난 음악적 감과 귀에 의존하여 연주를 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작곡까지 했는데 그가 작곡한 Minor Swing 같은 곡들은 미국 재즈 연주자들도 무척 자주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이다. 악보도 읽지 못하는 그가 이런 경지에 오르기까지 그는 하루 종일 음반을 듣거나 혼자서 기타를 치거나 하는 '기타치면서 혼자 노는' 엄청난 연습 아닌 연습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재즈 뮤지션으로 데뷔하기 전에 미국에 방문한 적도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본 적도 없는 그는 화상 사고후 회복하는 기간 동안에 들은 루이 암스트롱의 음반 하나 가지고 재즈에 대한 감을 익히고 미국에 역으로 영향을 끼치는 재즈를 구사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3. 쟝고 라인할트의 활동과 업적
화상 사고 이후인 1934년 쟝고는 Hot Club 이라는 이름의 클럽에서 연주 생활을 하는데, 이 때 그의 평생의 음악 동지이자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스테파니 그라펠리를 만나게 된다. 지난 97년 사망한 그라펠리는 클래식, 재즈 등 어떤 쟝르를 초월해서 바이올린 계에서 초일류로 인정받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쟝고와 그라펠리 그리고 또다른 두 명의 리듬 기타리스트, 베이스로 All String의 Quintet of the Hot Club of France가 탄생하게 된다. 쟝고의 이 퀸텟은 유럽을 휩쓸고 미국에까지 큰 영향을 끼쳐서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과 같은 거물 재즈 뮤지션들이 그들과의 협연을 위해 유럽까지 원정오는 큰 성과와 반향을 일으킨다.
또한 쟝고는 듀크 엘링턴의 초청으로 듀크 엘링턴 밴드의 솔로 주자로 활동하기도 한다. 특유의 자유로움과 낙천성, 부드러움으로 무장한 이 팀의 연주는 지금도 유러피안 재즈의 최고의 스타일로 꼽히는 팀이다.
쟝고는 사고 이후 손가락이 두 개 밖에 없다는 점과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다른 방향으로 승화시켰는데 대부분의 기타 코드를 손가락 두 개로만 연주할 수 있게 자신의 감으로 코드 폼을 모두 바꿔버렸고 그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은 기타 주법의 역사를 30년 정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4. 쟝고의 죽음
40년대 중반 이후 스윙 재즈가 퇴조하고 비밥이라는 새로운 재즈 사조가 등장하면서 재즈계는 젊은 비밥 재즈 뮤지션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 쟝고는 자신이 즐기면서 했던 스윙 재즈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음악을 고수한다. 43세가 되던 1953년 5월 낚시를 하러 갔던 쟝고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그의 가족들이 낚시터를 찾아갔는데 낚시를 하던 자세 그대로 심장마비로 사망한 채 발견된다.
모든 불가능과 한계를 음악에의 열정과 특유의 낙천성으로 극복했을뿐만 아니라 세계최고의 재즈 뮤지션으로 등극한 그를 사랑하는 재즈 팬과 재즈 뮤지션들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사후에 그를 애도하면서 만들어진 Modern Jazz Quartet의 Django는 재즈의 스탠다드 곡으로 지금도 많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즐겨 연주되고 있다.
그는 워낙에 오래된 뮤지션이지만 그의 음반들은 심심치 않게 복각되어 나와서 그의 연주를 찾아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대부분이 그의 생전 연주를 모아놓은 것이라서 어떤 앨범이라고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첨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것에 대한 경외감이 들고 계속 듣다보면 한계를 극복한 것뿐만 아니라 엄청난 뮤지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흔치 않은 쟝고의 음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Rosenberg Trio를 통해서 그의 흔적을 느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쟝고 라인할트의 곡을 주로 연주하고 역시 All-String 밴드인 이 앨범은 쟝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고...제2의 쟝고 라인할트로 꼽히면서 약관 17세에 데뷔한 Jimmy Rosenberg의 음반 역시 쟝고의 향취를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쟝고의 평생 음악 동지인 스테파니 그라펠리가 쟝고를 그리며 발매했던Young Django 앨범도 추천 앨범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brlee098 님 |
|
| Track this back : http://bulgsre.com/tt/trackback/140 |
|
|
|
|
|
<<
2010/09
>>
| S |
M |
T |
W |
T |
F |
S |
|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 26 |
27 |
28 |
29 |
30 |
|
|
|
Total : 29510
Today : 5
Yesterday : 24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