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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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Holiday -2-
1865년 남북 전쟁의 종료와 함께 흑인들에게 찾아온 해방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고된 노예의 일 끝에 제공되는 한 끼의 식사조차 없었으며, 정치 사회적으로 완전히 봉쇄된 계급으로서 그들 대부분은 생계를 위한 방도를 달리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태어날 때 10대의 부모를 가졌던, 그리고 그나마의 아버지마저 가정을 버리고 나가버린 상황에 처한 흑인 계집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말이다.

이 가련한 여성은 그래도 타고난 노래의 재능으로 비교적 손쉬운 밥벌이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일찌감치 버림받고, 이유야 어떻든 일거리를 찾아 어린 그녀를 두고 떠나버린 어머니로부터 아무런 사랑을 느끼지 못했으며, 몸을 의탁해야 했던 친척들로부터 홀대를 받아야했던 이 여자는 이윽고 알콜과 마약 중독자로서, 지독한 섹스광으로서, 성격 파탄자로서 자신의 육신(肉身)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한 사회 생활과 함께 재즈 역사상의 빛나는 예술가로서의 본격적인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존 해몬드(John Hammond). 이 위대한 이름이야 말로 오늘날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우리에게 전해준 인물이다. 일찍이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악단을 캔자스 시티로부터 끌어내었으며, 1970년대에 록 가수인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을 발굴해 내기까지, 블루스-재즈-록으로 이어지는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 음악의 역사를 한 축에서 떠받쳐온 존 해몬드의 눈은 빌리 홀리데이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뛰어난 역량은 그녀를 초기 베니 굿맨(Benny Goodman) 밴드와의 녹음을 주선할 수 있게 했고, 다시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Teddy Wilson)을 주축으로 조직한 밴드들과의 레코딩도 가능하게 만든다. 이 때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레스터 영(Lester Young),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 월터 페이지(Walter Page), 벅 클레이턴(Buck Clayton), 조 존스(Joe Jones) 같은 쟁쟁한 면면들이며, 코모도어(Commodore)와 컬럼비아(Columbia) 레이블을 통해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이 당시의 녹음들이야말로 20대라는 한창 나이를 뿜어내는 빌리 홀리데이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잇따른 애정 행각, 무절제한 생활로 떠돌이 가수 생활 전전 '37년에는 역시 해몬드의 도움으로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 들어가지만, 무절제한 생활로 이듬 해에 해고당하고 만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인기 정상의 백인 빅 밴드 리더이던 아티 쇼(Artie Shaw)가 조심스럽게 시도한 흑백 혼합 밴드에 동참하게 되지만, 남부 순회 공연 도중 일어난 갖가지 사고(?)들로 결국 마음의 상처만 입고 갈라서게 된다. 물론 아티 쇼는 신사 중의 신사로서 그녀를 위해 최대한 배려를 하긴 했지만, 너무도 뚜렷한 계급적 격차를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티 쇼는 당대 최고의 육체파 여배우였던 라나 터너(Lana Turner)를 비롯한 일곱 명의 아내를 차례로 맞이할 만큼 잘생긴 백인 남자로 아주 잘 나가던(?) 인기 뮤지션이었으니까.

빌리가 대중적인 지명도를 얻기 시작했던 계기는 진정한 선각자 바니 조세프슨(Barney Josephson)의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스윙 시대가 절정이던 '38년 그는 뉴욕에 카페 소사이어티(Cafe Society)를 개장하고 흑인 뮤지션은 물론 놀랍게도(?) 흑인 손님까지 받기 시작한 것이다. 존 해몬드의 도움을 받아 클럽은 성공했으며, 여기서 빌리 홀리데이는 대중들을 겨냥한 우울한 감상조의 노래들을 계속 발표해 히트하기 시작하는데, Strange fruit, Lover man, Gloomy sunday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클럽은 곧 보수 반동적인 언론들의 공격을 받기 시작해, 좌파로 몰리게 된 바니 조세프슨은 '50년경 클럽 경영에서 손을 떼야하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 어쨌든 빌리는 이 곳에서의 활동을 통해 백인 뮤지션들보다는 못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을 모으기도 힘든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정 편력은 그 돈이 그대로 모이게 놔두지를 못했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기타리스트인 프레디 그린(Freddie Green)과의 염문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남자를 갈구하는(?) 항로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녀는 뭇 남성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할 만큼 무척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예쁜 눈매며 오똑한 콧날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아일랜드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수긍케 한다. 다만 레스터 영과는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었는데, 여성처럼 온화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레스터 영에게서는 성(性)적인 느낌과는 다른 사랑을 느꼈나 보다. 그녀는 하필이면 마약 중독자에다가 자신을 학대하는 남자들을 위해 돈을 모두 써버렸다. 심지어는 자신을 경찰에 넘겨버린 남자 친구의 집에, 출옥 후 다시 찾아간 일도 있다. 왜냐하면,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혼란스런 와중에서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진정한 예술의 원리를 터득하게 하였나? 그러한 과정을 명백하게 추적할 수 있는 자료는 유감스럽게도 없다. 처음의 그녀는 베시 스미스(Bessie Smith)나 마 레이니(Ma Rainey) 같은 클래식 블루스 가수들의 영향을 보여 주었다. 철저하게 블루스로 무장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을 배우게 되었고, '기조 박자로부터 벗어나는 프레이징' 즉, 재즈 솔로에 있어서의 핵심을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오프 비트(off beat) 프레이징. 이것이야말로 스윙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아닌가. 거기에다가 그녀는 노래를 부를 때 요소 요소에 드라마틱한 표정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팝송 가수들의 안타까운(?) 노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내용을 위한 형식의 최소화'라는 예술의 중요한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는 뭔가 거창한 것을 노래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자기가 살아온 거칠은 세상 속에서 상처입은 가슴을 처절한 역설로 드러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신은 자기 것을 가진 사람만 축복하지요...(...God bless the child that got his own...)". 그렇다. 이것이 재즈 미학(美學)의 본질적인 쾌감이다. 하위 문화(下位文化) 속에서, 고통에 못이겨 결국 치솟아 오르는 생존이 승화된 예술. TV를 통해서 욕조에 들어 앉은 여인의 종아리를 타고 비누 거품이 흘러 내리는 장면과 함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가 요즘 잘나가는 댄스 뮤직 음반만큼 많이 팔리는 것이 재즈의 모습이라면 그런 착각에는 가담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아닌가? 만약 아니라면 그 말도 맞다. 어차피 하나의 대상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경험을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제 죽음을 향하여 서서히 다가가는 빌리 홀리데이는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하지만, 엠시에이 데카(MCA Decca)와 버브(Verve) 레이블을 통해 후기의 녹음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점점 사람들이 없어질 무렵, 조그만 아파트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열흘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59년 7월 17일, 그녀 나이 마흔 넷. 태어나면서부터 주위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했던 그녀는 연약한 자아(自我)를 혼자 끌어 안은 채 그렇게 떠난 것이다.

출처: http://www.myzon.com/music/artist/artist.asp?artist_id=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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