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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전도사
다혈질에다 쇼맨쉽이 풍부한 디지 길레스피는 본명이 존 벅스 길레스피다. 그런데 디지란 이름이 붙은 것은 하도 무대 매너가 다채롭고 연주가 현란해 현기증이 날 정도여서다. 어쨋든 그는 음악뿐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수완이 좋았으므로 오랜 기간 동안 좋은 선배로 재즈계에 군림했다.
디지는 1917년 10월 21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체로우라는 소도시에서 출생했다. 12살부터 트롬본을 배우다 1년 후에 트럼펫으로 전향했다. 이후 사춘기가 되었을 무렵엔 프로 빰치는 실력자가 되었다. 악단의 멤버로 일할 때 그는 늘 달시의 음악과 분위기에 불만이 많았다.
한번은 캡 캘로웨 이 악단에 있을 때 누가 잘못한 것을 캡이 오해하고 디지에게 덮어 씌운 일이 있었다. 이에 발끈한 디지가 그에게 칼을 휘둘러 다치게 했다. 이 정도로 과격했지만 숙소에서 불이 났을 땐 맨 먼저 달려가 동료를 구할 만큼 정의파이기도 했다.
40년대 초 비밥의 탄생에 있어서 디지의 역할은 중요하다. 물론 찰리 파커가 많은 이디옴을 만들어 냈지만 디지는 이를 잘 보완해서 많은 후배들에게 전수시켰다. 만일 디지가 없었다면 비밥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전파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의 주선으로 1950년대엔 많은 아티스트를 모아서 전 세계에 재즈를 전파하는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디지의 이름 앞엔 "재즈의 전도사"란 이름이 붙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 자체만 봐도 디지의 연주는 실로 빼어나다. 풍부한 폐활량에 엄청난 속도로 불어 젖히는 테크닉은 재즈 역사상 톱이라 할 수 있다.
한편 60년대 중반이후 그는 재즈계 일선에서 은퇴하지만 70년대 중반 존 파디스란 후배에 의해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워낙 디지를 좋아했던 존이라 그를 설득해 다시 무대에 세운 것이다. 그 덕분에 이 노장은 말년에도 지치지 않는 연주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대개의 리더들이 괴팍하고 심지어는 출연료까지 떼어먹는 데에 반해 디지만은 늘 멤버를 아끼고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었다. 모든 재즈맨이 한번쯤 밑에서 일해보고 싶은 그런 리더가 디지였던 것이다. 그의 기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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